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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환
Album Cover
Jimi hendrix
Album Information
 Genre
 Rock
 Release
 1967~1970
 Country
 U.S.A
 Format/Type
 이주환 ㅡ_ㅡ MWND
 Rating
 ★★★★★
 Label
 

 User Rating :
 (NOT RATED YET)
앞부분은 퍼온 글입니다 - 뒷부분은 제가 쓴글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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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Jimi Hendrix. 그의 짧은 음악활동은 단 네장의 앨범만으로 끝을 맺었다. Experience시절의 "Are You Experienced"('67), "Axis ; Bold As Love"('68), "Electric Ladyland"('68), 그리고 드러머 Buddy Miles, 베이시스트 Billy Cox와 함께 한 "Band Of Gypsys"('70)가 그것이다. 하지만 그의 생후에는 생전에 발표한 네장의 앨범의 몇배가 넘는 앨범들이 발표되었다. 그의 목소리, 데모 녹음, 실황 녹음, 방송을 통해 부른 곡들이 각 레코드사에서 발매되어 그를 추모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선물인 우크렐라를 익혔고, 다음은 친구부터 구입한 기타를 연주했다. 그리고 얼마간의 여유가 생긴 아버지가 선물한 전기 기타를 연주하게 되었다. 앰프까지 살 수 있는 여력이 안돼 앰프가 있는 친구의 집에서 연습을 했다. 열악한 어린시절을 그렇게 음악과 몇가지 운동경기에만 몰두해 지낸 지미핸드릭스는 1958년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유일한 즐거움이었던 음악에 더 몰두하게 된다. 전문적으로 음악 공부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Jimi Hendrix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들을 들으며 자신의 기타 실력을 쌓아갔다. 재즈에서 리듬앤 블루스, 락까지 그가 접하는 음악은 각양 각색이었다. Jimi Hendrix의 왼손 연주방식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기타를 도둑맞아 친구의 기타를 이용하면서 시작되었다. 기타들은 대개 오른손용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Jimi Hendrix는 이때부터 왼손 연주방식에 몰두하게 되는 것이다. 1966년 Jimi Hendrix는 베이스 Noel Readding와 드럼 John 'Mitch' Mitchell과 함께 "Experience"라는 그룹을 결성하여 3일간의 연습 후 Johnny Halliday의 유럽 공연에 참여한다. 첫번째 싱글인 'Hey Joe'가 Polydor사의 레이블을 달고 발매되었다. 이 싱글의 발표로 Experience를 찾는 이들이 생겨났고, 각종 TV의 출연도 잇달았다. 다음으로는 영국 차트 3위에 오른 두번째 싱글 'Purple Haze', 그리고 세번째 싱글 'The Wind Crise Mary'와 첫 앨범 "Are You Experienced"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 이 앨범은 미국과 영국에 실린 곡들이 다르게 구성되어 있다. 앨범의 성공과 주위의 찬사(L.A. Times에서'Hendrix와 Experience는 미래를 흔들 인물들이다'라고 평함)를 얻은 Hendrix는 스타라는 의미가 주는 압박과 무리한 공연 등으로 술과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두번째 앨범 "Azis Bold As Love"를 녹음해 갔다. 이 앨범을 "Rolling Stone"지에서는 "현재 록계에 있어 가장 우수한 마술적인 앨범"이라고 까지 평했다. 그리고 Experience 활동의 마지막 앨범이자 더블 앨범인 "Electric Ladyland"가 나왔다. 나오자마자 세간의 시선을 모으며 팔려나간 이 앨범은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차트 1위를 석권한다. 또한 "New york Times"에서는 "진정한 하나의 문화적 사건"이라는 극찬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인기는 Hendrix에 집중이 되는 것이었고 다른 두 맴버들은 "Hendrix는 함께 일하기 어려운 인물"이라 말할 정도로 팀웍에 문제가 생겨, 끝내 팀은 해체되고 만다. 이후 Jimi Hendrix 군대시절의 친구인 Billy Cox, Buddy Miles와 함께 Band Of Gypsy를 결성하여 생전 마지막 앨범인 "Band Of Gypsys"를 발표한다. 그리고 70년 1월말 베트남 휴전 추진 위원회를 위한 자선쇼에도 참여하고, 유럽 공연에도 참여 하는 등 음악적 활동을 지속했지만 이미 그는 마약에 찌들은 상태였다. 또한 7월에는 영화 "Rainbow Bridgs"에 출연하는데, 이때 그는 자신의 영혼이 육체를 빠져나가는 듯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마지막의 생애를 보낼 시기에 그는 많은 여자들과 함께 있었고 마지막 파티에서는 LSD를 복용하고 많은 양의 술을 마셨다. 다음날 아침 그는 생선 샌드위치를 먹고 수면제를 복용하고 잠이 들었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 모습, 급히 병원으로 옮겨 응급처치팀이 '곧 괜찮아질 것'이라는 말을 뒤로 세상을 떠났다. 지미 헨드릭스는 말 그대로 기타라는 악기를 새로이 창조했다. 그가 내는 기타 음은... 마치 기타가 설움과 분노에 북받쳐 울음을 우는 것 같다. 그는 블루스에 머물지 않고 록으로의 한 걸음을 내 걸 었지만 그의 기타의 소리는 블루스가 가지고 있던 필을 그대로 이어 받았다. 지미 핸드릭스 이후에도 훌륭한 기타리스트들이 많이 등장하였지만, 그렇게 생명력을 가지고 사람의 마음을 휘어 잡 을 정도의 연주를 보여주었던 기타리스타가 과연 있었던가 싶다. 그는 요절하였지만 더 오래 살 수도 없었을 것이다. (약물로) 삶을 짜 내어서 나온 설움과 분노의 기타 음을 위해서 그는 자신의 삶을 깎아내었던 것이다. 그의 음악은 블루스와 록 에너지와 사이키델릭의 몽롱함이 절묘하게 얽히면서 나타난 놀라운 결과였다. 물론 피드백과 디스토트된 기타음은 그의 이전에도 있었지만, 그러한 소음을 음악적인 표현의 영역으로 포함시킨 것은 바로 지미 핸드릭스였고, 그것은 기타가 바로 블루스의 전담 악기가 되었던 이유 즉 필링을 표현할 수 있다는 특징을 끝까지 밀어붙인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지미 가 위대한 이유이다 - 여기까진 엠파스 지식검색소에서 퍼옴-----------------------------------------------------------------------

역사상 지미핸드릭스만큼 뭇 기타리스트들의 존경과 선망을 받아온 기타리스트가 있을까요?
 제부터는 지미핸드릭스에 대한 잡이야기들을 제가 쓰겠습니다..
 --------1. 에릭클랩튼과의 일화------------- 클랩튼은 한때 지미의 연주를 보고 한동안 기타를 안잡았다고하죠.. 자괴감에 빠졌었데나 뭐래나...
 --------2. 전승된 불행---------------------- 유명한 이야기지만, 불세출의 블루스맨 Stevie ray vaughan은 지미의 대단한 광팬이었습니다. 비록 입문은 지미가 아니라 그의 형 지미 본(아.. 지미는 지미군)에 의해 기타의 길로 들어섰지만. MR. Perfect라는 칭호에 걸맞는 완벽한 연주와 B.B King이 아주 예뻐했던 "백인임에도 불구하고"갖고 있는 흑인의 Blues Feel은 Tin pan alley같은 명곡에서 듣는이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죠.. 그러나.. 역시 스트비레이본도 지미와 같이 마약의 세계 에 빠져들었다가.. 재기에 성공함으로써 지미와는 다른길을 가는듯 했습니다.(김빠지신 분 있죠 방금?) 그러나.. 스티비는 결국 지미의 뒤를 밟고 맙니다. 에릭클랩튼과의 마지막 공연(잼을 주고받았다 합니다.)을 끝내고 탄 헬기가 추락해서 스티비는 30대초반의 젊은 나이로 사고사 하고맙니다. 젊은시절의 영웅의 뒤를 또다른 영웅이된거죠.(동영상을 보면, 실제로 스티비는 지미의 기타를 뒤로 돌려서 하는 플레이를 따라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다만 이빨연주는 못봤군요)
-------3. 70년대는 불행한 때--------------- 바로 Doors의 Psychidelic Hero, 시인이었던 짐 모리슨이 죽은해도 71년이죠(70년인가?).. 우드스탁에서 서로 보고 우정의 악수를 나누었을지도 모르는 두명의 영웅은 그렇게 죽었습니다.(모리슨은 파리 도망(?)생활에서.. 역시 마약에 찌들어서 목욕탕 안에서 심장마비사했다합니다. 지미의 묘는 어디있는지 모르지만, 모리슨의 묘는 프랑스의 '예술인들의 무덤' 한켠에 안치되 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 이사도라 던컨, 차이코프스키등과 함께요. 그리고 그의 묘지는 히피들의 순례지로써 항상 술과 타들어가는 담배가 있다하는군요)
--------4. 지미의 죽음에 대한 또다른 이야기------------ 아. 별다른것은 아닙니다. 다만 윗글과는 다른 내용인데요. 참치샌드위치를 먹고.. 토하다가 목에 걸려서(기도가 막혀서)죽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아, 더불어 지미와 함께 Jimi hendrix Experience를 이끌던 노엘 레딩(Noel)이 얼마전 돌아가셨다고 하는군요. - 삼가조의를 표합니다 - ... 얼마전 지미의 말로만 듣던 이빨연주를 본적이 있습니다. Voodoo chile이었는데요.. 정말 대단하더군요. 지미핸드릭스가 살아있었다면 아마도 'Guitar god'의 칭호는 에릭이아니라 지미의 몫이 아니었을까요?

 
HIT : 1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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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16
00:30:45
이미지명이 한글로 되어 있어서 출력이 되지 않습니다. 삭제를 하였으니 다시한번 영어로 된 이미지명으로 등록해 주세요. 싸이즈는 적당히 크기면 좋겠죠..^^

아 그리고 글을 올리실때요....적당히 띄어 쓰기로 해주시면 보시는 분들이 편하겠죠..^^;;

멋진 리뷰 부탁 드립니다.
POINT:
(NOT R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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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환
2003.06.16
16:26:10
<BR>이라 해야 띄어지는군요 -_-; 태그를 몰라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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